글번호
260262

2023학년도 해외문화 장학연수 후기(유럽)

수정일
2024.03.15
작성자
국제교류교육원
조회수
232
등록일
2024.03.15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나요?” 프랑스 여행을 준비하면서 극적인 삶을 산 비운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자주 눈에 띄었다. 사치와 향락으로 국고를 낭비해 프랑스 혁명을 자초한 인물 또는 혁명으로 인한 마녀사냥으로 단두대에서 처형된 비운의 여인으로 평가받기도 하는 마리 앙투아네트. 마리 앙투아네트와 647개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둘러싸고 벌어진 사기극이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도화선이 되었고 이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프랑스 대혁명과 마리 앙투아네트의 흔적을 따라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 이슬로 사라지기 전까지 수감되었던 교도소인 콩시에르주리에 방문하였다.


콩시에르주리는 필리페 4세가 세운 궁전으로 14세기 당시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궁전으로 사용되던 건물이지만 프랑스 혁명 때는 감옥으로 사용되어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프랑스 대혁명 시대의 감옥 모습을 소개하는 자료실이 있으며 이곳에서 76일을 보냈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독방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으며 유품들도 전시되어 있다. 콩시에르주리를 둘러보니 오스트리아에서 13살 때 프랑스에 세자비로 시집와 프랑스의 왕비로 영광을 누리다가 남편인 루이 16세를 단두대에서 먼저 보내고 아들, 딸과 떨어져 소식도 듣지 못하며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가장 유명한 왕비, 그러면서도 가장 많은 미움을 받은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 굶주린 시민들을 외면하면서도 온갖 사치를 일삼아 희대의 악녀로 평가받기도 하였는데 오히려 당시 다른 왕족들에 비해 검소하고 친절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마리 앙투아네트가 죄가 없다고 볼 수는 없다. 당시 프랑스 상황을 보면 프랑스 기득권자에게는 누구나 잘못이 있었고 국가를 이끌어가는 왕과 왕비라면 그에 걸맞은 책임이 있다. 하지만 당시 프랑스는 극심한 격동기를 겪고 있었고 그걸 이끌기에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저 음악과 미술을 좋아하는 평범한 공주가 아니였을까? 콩시에르주리를 둘러보며 마리 앙투아네트가 겪은 고통과 쓸쓸함이 느껴지면서 당시 억울한 누명을 씌어 죽음까지 몰고 가고 지금까지 마리 앙투아네트로 장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기구한 삶이라는 생각을 했다. 수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마리 앙투아네트를 사치스럽고 국민들의 처참한 삶에 무관심하고 무지했다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젠 마리 앙투아네트가 굶주린 시민들을 외면하면서도 온갖 사치를 일삼은 악녀라는 오명을 벗고 그녀의 진짜 모습을 찾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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