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감문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내 인생 첫 해외여행을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해외문화장학연수를 통해 갔다 올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고 모두 무사히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는 것에 고마움을 느끼며 연수 소감에 대해 말해보겠다. 우리 팀은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이렇게 총 4개의 국가를 견학하였다.
첫 번째 연수 국가인 영국에서는 미술관 견학의 비중이 다른 국가보다 많았다. 네셔널 갤러리, 대영박물관, 그리고 테이트 모던까지 이렇게 총 3개의 미술관을 다니며 영국의 고전부터 현대까지의 작품을 둘러볼 수 있었고 세계 3대 박물관인 대영박물관에서는 엄청난 작품의 양과 그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유물들을 실제로 볼 수 있어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구경했다. 내가 이 중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작품은 테이트 모던에 전시된 뒤샹의 ‘샘’이라는 작품이었다. 그 이유로는 그저 미술시간에 책에서 본 기억이 나서가 전부이지만 그 작품과 책에서 처음 조우했을 때 내가 인상 깊게 보았기 때문에 작품과 나 사이에 있던 작은 익숙함이 나를 작품 앞으로 데려간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연수 기간 동안 수많은 작품들을 보면서 미술관이나 박물관 견학의 좋은 점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먼저 눈으로 감상하고 나서 설명을 참조하고 다시 보면 새로운 작품을 보는듯한 시각으로 두 번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 있는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의 설명을 들었을 때는 미켈란젤로의 고통이 마치 나에게 전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영국에서의 나날들은 해외에서의 적응 기간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식비도 아껴야 하고, 컨디션 조절도 필수였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는 영국에서 보낸 시간이 유난히 짧다고 느껴졌지만 영국에서 잘 적응했기 때문에 나머지 여정들도 수월하게 해나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도 많았다. 그 중하나는 우리팀이 영국에서부터 연수 마지막 국가인 로마까지 모두 기차를 타고 이동했는데 그때마다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것이다. 용산역보다 큰 기차역에서 우리가 탈 기차를 찾는 것도 정신이 없었고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계단을 오르는 것도 정말 힘들었지만 가장 큰 걱정은 바로 기차가 지연되거나 갑자기 운행을 안 하는 경우가 생길지도 모르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와 달리 유럽은 기차 파업이 잦았고 기차 출발시간이 지연되어 일정에 문제가 생기면 노숙을 해야 하는 상황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말 다행스럽게도 피사에서 로마로 가는 기차가 1시간 지연된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제시간에 기차를 탈 수 있었다.
또 하나는 팀장인 내가 소매치기 혹은 위험해 보이는 사람으로부터 너무 주의를 한 나머지 짐 보관소 직원까지 의심해 버린 일이다. 팀원들은 직원에 안내에 따라 행동하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그 직원이 너무나도 수상한 사람으로 보였었다. 차림새도 전혀 직원 같지 않았고 내가 예약한 위치와는 다른 장소로 안내를 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직원의 안내를 모두 무시하고 팀원들에게 이상한 사람 말 듣지 말고 내 쪽으로 오라고 말했었다. 결국 그 직원은 내가 예약한 내역을 나에게 확인시켜주었고 따라가보니 그곳에는 수많은 캐리어들이 있었다. 나는 그제야 안심하고 직원에게 사과를 했고 직원은 종종 있는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그 외에도 나와 팀원들은 개인이 소지품 관리를 철저히 했고 서로의 짐을 감시하는 노력 등으로인해 소매치기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다. 악명 높은 파리 북 역에 저녁 늦게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숙소에 도착하였으니 말이다.
파리는 우리 팀의 연수 보고서에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도시이다. 왜냐하면 기관 견학도 성공적으로 성사되었을 뿐 아니라 한국인들이 근무하는 한국수력원자력 파리사무소와 장애인이 근무하는 사회적기업 ‘Joyeux cafe’도 위치해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수원 파리사무소에서 직원들의 환대를 받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도 한국인이 너무 반가웠고 그곳 직원들도 우리가 너무 반가워서 해주고 싶은 얘기가 많다고 했다. 특히 차장님께서 한수원이 파리에 있는 이유와 현재 원자력 시장의 흐름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고 진심이 담긴 조언을 해주셨다. 헤어질 때는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하고 말씀해 주셔서 마음까지 든든해지는 시간이었고 지금까지 취업시장을 한국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내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우리는 다시 스위스로 출발했다. 스위스의 수도 베른에 도착해 아인슈타인 박물관을 견학하고 구시가지 거리를 걸으며 감옥 탑, 곰공원 등을 구경했다. 옥색 빛 강물이 흐르는 도시경관과 멀리서 보이는 이름 모를 설산을 보고 있자니 기후온난화로 지구상에서 인간이 살 곳이 점점 줄어들게 된다면 마지막으로 남을 곳은 내가 서있는 이 자리일 것 같았다. 지금까지 회색 하늘만 보다가 스위스에서 처음으로 파란색 하늘을 보았기 때문에 더 감격스러웠던 것 같다. 우리 팀은 계획한 대로 숙소에서 분리수거와 장바구니 사용 등 저탄소배출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굳이 계획하지 않아도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보면 누구라도 쓰레기와 오염물질을 배출하고 싶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팀은 이때쯤 아픈 팀원들이 발생했었기 때문에 컨디션 조절과 짐 정리 등을 하며 정비시간을 가지고 이탈리아 밀라노로 떠났다. 밀라노에서는 스위스와 반대로 미세먼지가 극심해서 빨리 피사로 넘어가고 싶었다. 또한 견학이 예정된 SOS 재단 ‘Telefono Azzurro’가 구글 지도에는 나와있지만 실제로는 건물이 없는 사건이 일어나서 당황했던 일이 있었다. 혹시 우리가 못 찾은 건 아닐까 하고 그 주변을 하염없이 돌아다니다 결국은 숙소로 돌아왔어야 했다. 그렇게 모두 아쉬워하며 밀라노에서는 큰 성과 없이 떠나려나 했을 때 지하철역에서 처음보는 교통약자용 리프트를 발견했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지상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하여 비장애인과 장애인 모두 이용할 수 있게 하지만 이 리프는 오직 교통약자만을 위해서 설치했다는 게 너무 감명 깊었다. 리프트는 아쉽게도 점검 중이어서 작동하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계단 한쪽 면에 설치되어 비장애인과 같은 출구로 이어진 레일을 보고 한국에도 설치된다면 교통약자들의 사회참여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였다.
이렇게 계획이 틀어져도 새로운 걸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연수의 묘미인 것 같다. 약 3주간의 연수를 하면서 내가 대학에 온 목적과 앞으로의 진로설계의 방향 그리고 해외문화장학연수라는 프로그램이 왜 존재하는지, 프로그램이 의도한 바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평소 새로운 것을 도전하기 두려워하고 매일 정해진 틀안에서 살아가는데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었기에 내가 아는 맛의 음식, 내가 가던 길, 내가 아는 사람들만 만나는 성격이었다. 게다가 나는 약간의 무기력함과 도전의식이 결여되어 있었다고 냉정하게 평가할 수 있다. 이런 내가 해외문화장학 연수를 신청하게 된 계기는 곧 3학년이 되지만 시작조차 못한 진로설계와 그동안 누적된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나 자신을 재정비하고 명확한 목표를 만들고 싶어서였다.
결과적으로 연수를 통해 얻은 것은 반복되는 성취감과 사고의 폭이 넓어진 것이다. 사실 연수에 합격한 순간부터가 내가 벌린 일을 수확하는 성취를 맛보게 하였다. 또한 영국에 처음 발을 디딘 것, 외국어로 주문한 것, 모나리자를 내 눈에 담은 것,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 것, 미켈란젤로에 대해 알게 된 것 등 남들이 보면 사소해 보일지 모르는 것들이 매일 나에게 성취감으로 되돌아와 무엇이든 경험해 보고 싶은 욕구와 심지어 그것을 잘해낼 것만 같은 희망을 심어주었다. 마지막으로 누군가가 지금 당장 유럽에서의 기억을 떠올려보라고 한다면 오랜 시간 꿈을 꾼 것 같았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만약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거나 아직 국제교류원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보지 못한 학우들이 있다면 해외문화장학연수만큼은 꼭 참여했으면 한다. 일상에서 찾지 못한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