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과 3학년 과정을 마친 이 시점, 5년이라는 학과 생활의 절반을 이제 막 넘긴 바로 이 시점에 좋은 기회를 얻어 같은 과 친구들과 유럽 연수를 가게 되었다. 1~2학년이었다면 건축적 지식이 다소 부족했을 것이고, 4~5학년이었다면 포트폴리오와 취업 준비로 먼 유럽으로 훌쩍 떠나는 것은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3학년을 끝낸 지금 이런 기회가 내게 왔다는 것은 그야말로 천재일우라는 생각이 들어 팀원들과 열심히 학과 생활중에 80장짜리 계획서를 작성했고 다행히 합격해 급하게 여행 준비를 하게 되었다.
유럽의 여러 나라 중 총 7개국을 가기로 계획하였는데, 나라별로 각각 하나의 도시만 가기로 계획하였다. 프랑스 파리, 스페인 바르셀로나, 포르투갈 포르투, 영국 런던, 벨기에 브뤼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그리고 핀란드 헬싱키이다. 사실 이번 연수는 내게 첫 유럽 방문은 아니었지만, 몇몇 나라들은 8~10년 전에 갔었던지라 기억도 굉장히 희미해졌을뿐더러 당시에는 고작 중학생에다 건축에 뜻도 없었던지라 방문한 곳들을 그렇게 주의 깊게 보지 않았었다. 반면 이번에는 건축학과 학생들끼리 뜻을 모아 정말 건축물 위주로 계획하였기 때문에 가봤던 곳이던 처음 가는 곳이던 정말 모두 새로운 시야로 볼 수 있었고, 이 시기의 나에게 정말 가치있는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기존의 패키지 여행은 아무래도 일정도 이미 정해져있고, 그저 버스타고 이동하고 내리고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것의 반복이라 잘 와닿지 않았었다. 하지만 처음 가는 나라에서 스스로 교통편과 문화를 알아보고, 현지인들에 섞여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이동하며 부족한 영어와 현지 언어로 떠듬떠듬 느리게나마 의사소통하는 이번 연수는 내게 각 나라마다의 고유한 분위기를 정말 충만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물론 돌발상황이 없지 않았지만, 급하게 일정을 바꾸고 대안을 알아보거나 정처 없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마저도 내게는 좋은 경험이 되어준 것 같다.
건축학과 학생들끼리 여행을 계획하고 다녀오며 가장 좋았던 점은 앞서 언급했 듯이 건축물이라는 공통된 관심사이자 큰 테마를 잡고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루브르 박물관, 빅벤처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건축물뿐 아니라, 르 코르뷔지에나 가우디처럼 나라별로 유명한 건축가를 하나씩 정해 그 사람이 지은 건축물을 위주로 답사를 다니기도 했다. 물론 건물마다 어떤 양식과 구조가 적용됐는지 수업 시간에 배웠던 내용을 바탕으로 간단한 토의를 나누는 것도 빠뜨리지 않았다. 또 일정이 비교적 여유로운 날에는 숙소나 카페에 다 같이 모여앉아 건물들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직접 찍은 사진들을 보며 열심히 스케치를 하는 것도 즐거웠다. 우리 모두 다른 사진을 가지고 찍었는데, 내 경우에는 꼭 유명한 건물이 아니라 그저 길 가다 찍은 이름 모를 건물이나 거리가 마음에 들면 그 모습을 그리기도 하고 함께 찍힌 친구들의 모습도 같이 그려 넣기도 했다. 나는 지난 겨울방학에도 스스로 ‘1일 1스케치’ 과제를 수행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여행 중에 그리는 것이다 보니 ‘1나라 1스케치’로 축소해서 딱 7장의 그림을 그렸다. 장수가 결코 많지는 않지만, 지난번과는 달리 내가 돌아다니며 직접 찍은 사진을 가지고 그리니 훨씬 의미 있었던 것 같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3주간의 여행을 마치고서, 무거워진 캐리어와 넘치는 사진들을 정리하며 이번 여행을 찬찬히 돌아보았다. 정말 앞으로 살아가며 이렇게 알찬 여행을 또 할 수 있는 날이 있을까 싶었다. 물론 학교에서 크게 지원해준 덕에 큰 맘먹고 돈과 시간을 들여 여행을 계획할 수 있었지만, 그걸 차치하고도 정말 다양하고 좋은 경험을 잔뜩 할 수 있는 여행이었다. 혹시라도 해외에서 이런 의미있는 경험을 함께하고 싶은, 서로 뜻이 맞는 사람이 있는 학생들은 꼭 이 해외문화 장학연수를 신청하는 것을 추천한다. 본인만 준비가 되어있다면, 평생 기억에 남을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